하루하루 쉴틈 없이 달려가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계속  따라왔었다.

이유는 몰랐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항상 걸어오던 나에게 달리기는 첫걸음마를 배우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그 때와 달리 옆에서 응원을 해주는 어른도, 넘어져도 괜찮다는 위로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를 치고 앞으로 달려가는 뒷모습을 수 없이 봐오고 여러번 멈춰선 뒤 나는 계속 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달리는 것이 익숙해 질때쯤 나는 걷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달리던 내 발은 서서히 무거워 지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창 밖을 응시하던 진이 생각을 곱씹었다.

벌써 3번째 이다.

대학교 4 학년 이제는 취업을 준비해야하는 나이에 진에게는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사실 애초에 대학교를 들어간 것 부터 커서 미래가 아닌 시골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 였고 남들이 다 취업준비로 정신이 없자 그저 남들이 하던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아무런 열정도 계획도 없이 시작한 공부는 2번의 낙제를 안겨주었고 3번째 시험에서는 자신의 애인만 붙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발표후 자신 때문에 합격의 기쁨을 애써 숨기려는 애인의 모습에 무엇인가 불쾌감을 느꼈고 모든걸 다 내팽겨 둔채  조그만한 캐리어 하나를 끌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그래.. 잠시만 쉬었다 오는거야.'

계속해서 올라오는 불안감을 가라앉으려 진은 멍하니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크고 번쩍한 건물을 지나가던 버스는 이제 한적한 동네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 망했다."

진은 작은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분명 지금 시간은 아직 저녁이라도 무방한 시간이지만 이곳은 한 밤인 듯 어두웠다.

분명 예전에는 눈감고도 돌아다니던 곳이 였는데 사라져가는 기억과 어두운 탓에 진은 길을 잃어 버렸다.


지금 이 시간대면 밖에 나와있는 사람은 없을텐데

진은 짧게 탄식하며 핸드폰을 켰다.




'부재중 전화 (6) - 우리형♡'

내가 분명 떠난다고 말하지 않았나? 진은 전화를 할까 망설였지만 잠시동안은 미뤄두고 싶어졌다. 그리고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옆에있던 안내판을 비추었다.



"아니 여기는 관리를 안하나.."


안내판은 시간의 흐름을 말하는듯 낡아있어서 글씨 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몇분 동안 안내판 글씨를 읽어보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하..."


진은 힘없이 캐리어 위에 앉았다. 차가운 밤공기가 진의 피부를 스쳐 지나갔다.



"...훌쩍"

왠지 처량했다. 이럴려고 다 내팽겨치고 내려왔나 싶었고 다시는 안오겠다고 큰소리를 친것 치고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보였다.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자신이 여길 오기위해 포기했던 것들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씨발..."


두눈에 눈물이 흘러 나왔다. 이도저도 못하는 제 상황이 화가나면서도 너무 한심스러웠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건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너무 막막했다.






"이봐요! 거기 누구 있습니까?"


한참을 고개 숙여 울던 진이 소리난 곳을 보았다. 어느 한 남자가 손전등을 쥔채로 오고 있었다.



"여기서 지금 뭐하시ㄴ....."



"진..?"


남자는 놀란눈으로 진을 보았다.  진 또한 놀란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제드?"













"야이 띨빡아 온다면 온다고 연락을 해야지"

진에게 안전벨트를 채워주며 제드가 말했다.


"훌쩍.. 나도 내가 올줄 몰랐지 새끼야.."

진이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말을 했다. 그런 진의 모습을 보고 제드가 한숨을 쉬었다.


"어째 서울 갔다 온 놈이 얼굴이 더 상했어."


"몰라 이새끼야.. 추워 문닫아줘 훌쩍"


제드는 말 없이 차문을 닫아 주었다. 

역시 제드는 눈치가 빨랐다. 어릴적부터 제드는 진이 무슨 고민이 있어보이거나 힘들어 한다는것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 차렸지만 진이 먼저 말해줄때 까지 기다려 왔다. 

입은 험했지만 배려심 하나만큼은 잘 갖춘 친구 였다.서울을 간 뒤에도 꾸준히 연락을 할 정도로 제드는 진을 매번 챙겨주었다. 물론 연락도 진이 답을 안해서 매우 뜸해졌지만 이 것 또한 제드는 기다려 주었다.





"갑자기 왜 돌아온거야?"


운전을 하는 제드가 물었다.


"그냥 꼴보기가 싫어서"


"누가?"


"다"


진의 답에 제드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꼬인건 여전하네"


제드의 말에 진이 노려보았다.


"그럼 연락은 왜 안 받은건데?"


"나도 꼴보기 싫었냐"


제드의 물음에 진은 잠시동안 입을 다물었다.


"아니.. 내가 꼴보기가 싫었어"


"...."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너 그러면 원래 살던 곳에서 지낼꺼야?"


"그래야지"


"..아주머니는 연락 없으셨어"


진이 수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날 엄마는 쪽지 하나 없이 집을 떠났다.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엄마의 부재는 진에게 큰 고통이었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지내는 것 조차 괴로워 서울로 도망치듯 떠난 것이었다.


"이제 연락와도 안 받을꺼야."


"짜증나.. 그 여자"


무슨 이유든 간에 말없이 떠난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자신의 부재로 내가 받을 고통을 잘 알고있으면서도 아무런 예고도 없이 떠난것은 큰 배신감이었다.



끼익-

울퉁불퉁한 길을 지난 뒤 차가 멈춰섰다. 

떠났을 때 그 모습 그대로의 집이 진을 반기고 있었다.



"어째 안 낡았다?"


제드가 트렁크에 있던 캐리어를 꺼내며 말했다.


"아 너 케인 기억나냐?"


"너 동생?"


"어  너 떠난 뒤로 매일 여기와서 눈쓸고 거미줄 치우고 아주 정성스럽게 관리하던데?"


제드의 말에 진의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야 너 기억안나냐 케인이 너 맨날 쫓아다녔잖아."


"그건 기억나지 근데 왜 그런 귀찮은 일을 했냐고"


"몰라 근데 너 떠난 후로 걔 며칠동안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였어."


"그래?"

떠나기 전에 말이라도 해줄걸 그랬나 

제드의 말에 진은 미안함을 느꼈다.



"그 꼬맹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


"꼬맹이? 야 이제 꼬맹이라 부르지도 못해 덩치가 산만해져가지고"


"너보다도 훨씬 클 껄?"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어?"


"그런것도 있고 그놈이 성장이 빠른것도 있고"


"케인 이제 현역이야 신기하지? 그 초딩이 수능 볼 나이가 된게."


"신기하네"


그 꼬맹이 지 형 닮아서 싸가지는 없어도 귀여웠는데

자신의 무릎 언저리에 오던 케인은 진을 잘 따랐다. 자신의 형과 진이 투닥거리면 항상 진의 편이었고 진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려고 했다.

 그럴때마다 진은 케인을 떼어내려 애를 썼지만 그런 케인이 진은 싫지는 않았다. 작은 발로 졸졸 쫓아다니던  모습이 퍽 귀여웠기 때문이다.


"이제 됐지? 나 가본다"

제드가 진의 집 열쇠를 지어주며 말했다


"어~ 다신 오지마라"


"너나 나 찾아오지마 씹새끼야"


제드와 일상적인 인사를 마치고 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집안은 오랫동안 사람이 없던 것치고는 매우 깨끗했다. 진은 집안의 불을 키고 짐을 풀었다.


"으.. 추워"

진은 보일러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


"아 잠만 고장난거야?"

전원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지만 보일러는 야속하게도 켜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잘 수 없었다. 안그래도 추운 겨울에 추운 곳에서 추운 밤을 지낸다고? 얼어죽기 십상이었다.
진은 안방에 있던 오래된 장롱에서 솜 이불을 꺼내왔다.
아무리 두꺼운 솜이불이라고 해도 얼음장 같이 차가운 방바닥에는 무력했다.


"제드에게 연락할까.."

진은 핸드폰을 켰지만 왠지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몰라.. 누워있으면 알아서 뜨뜻해 지겠지"


진은 안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완전 새 것 같네"


천장위 거미줄도 없을 뿐더러 드문 드문 뜯어져 있던 벽지도 새 것처럼 매꿔져있었다.



"뭘 이렇게 정성스럽게 했데"


누워있으니 슬슬 졸음이 밀려왔다.

"케인 그 꼬맹이.. 이제는 교복 입었겠네"


"꽤 웃길 것 같은데.. 그래도 나쁘진 않겠지 뭐..못생긴 놈은 아니였으니까."

"아닌가? 자라면서 역변했을려나"

어릴때 와 달리 우락부락 해져 있는 케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진이 짧게 웃었다.




"그래도 어릴 때 멍청하던 그 모습 참 좋아했었는데.."


어린시절 자신을 쫓아다니던 케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에 드려는 순간이었다.





쾅쾅쾅-


몽롱하던 정신이 번쩍 들어왔다.

"뭐..뭐야?"
진은 조심스럽게 이불 밖에서 나왔다.

"누군데 이밤에 문을 두드려..."

순간 진의 머리속에 문이 잠겨있지 않는 집문이 떠올랐다.


"...미친"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는 집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놈이든 간에 나를 보러온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불켜진 집문을 당당히 열고 들어오겠는가

진은 한껏 긴장한채로 한손에는 스탠드를 들고 한손에는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문열면 바로 던져버리는 거야..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소리를 지르ㅈ.."

진이 문을 열려는 순간 방문이 열렸고 진은 힘없이 뒤로 밀러났다.
문을 연 사람이 진에게 다가오자 진은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려 드렀다.




그사람은 진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고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럴 수록 진은 몸을 더욱 움츠려 들었다.







그러자 그사람은 얼굴을 가리던 진의 팔을 잡아 치웠다.
진은 실눈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진이야?"

그사람 아니 그 남자가 나지막히 말했다.


"어...?"


진은 다시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긴머리의 금빛의 눈을 가진 남자는 진을 보며 웃고있었다.



"언제온거야?"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진을 뒤로 한채 그 남자 아니 케인은 진을 끌어안았다.


"보고싶었어.. 정말로"


















@Jhinsexy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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